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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USEUM

OUR STORY

START OF DREAM

1978년 가을에서 1979년 봄으로 넘어가던 그 시절, 그때도 우리 부부는 각자 자기의 일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은행에 새로 바뀌는 컴퓨터 기종에 맞추어 전산프로그램을 다시 짜는 기획을 해야 했고 남편은 그 동안 몸담았던 주식회사 대우를 떠나 "아가들을 위한 모든 것"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차장 때부터 데리고 일하던 인천여상을 졸업한 여직원 하나만을 데리고, 혈혈단신 "아가방"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업하기 위한 준비 차 이태리로 프랑스, 영국으로 혼자서 분주히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회사든, 기업이란 일단 시작해서 구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종업원이든 창업자 자신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조직의 논리, 자본의 논리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기가 세웠어도 자기는 없고, 나중에는 사람이 만들었어도 만든 그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기업이란 거의 없는 법인데 저이는 저렇게 신나서 "아가방" 창업하기에 여념이 없으니 지금은 말릴 수 없고, 다만 그가 언젠가 사람에게 지치고 실망할 때, 그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출장에서 돌아와 자랑스럽게, 틈틈이 혼자 만든 아가방 사업계획서를 내게 내밀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도 나의 사업계획서가 있답니다. 나는 우리가 늙은 후 아이들도 다 품에서 떠날 때, 당신에게 호형호제하며 지금은 없으면 못살 것 같이 당신을 반기고 따르는 사람들이 언젠가 제 욕심을 따라 당신을 등질 때, 그 동안 추구하던 돈과 사람과 조직에 지치고 곤비하여, 자연의 자연스러움, 사람의 사람다움이 그리워지는 그때를 위하여 나는 지금부터 조용히 준비할 계획이 있답니다."

그리고는 그 언젠가 자연속에서 초콜릿워크숍을 할 계획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찾아오는 손과, 낮에는 낚시질하고 등산하며 같이 놀아주고, 저녁에는 우리가 빚은 포도주들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다음날 객이 떠날 때 그의 손에 손주나 아이들 주라며 우리가 손수 만든 초콜릿을 쥐어주면서 사는 것. 그래서 그의 아이들이나 손자들에게 늘 인기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

그것이 가업이고 삶인 우리들의 늙은 날은 어떤가고…? 그는 가만히 있었지만 저는 그의 눈 속에서 내 의중에 대한 무언의 동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저희는 초콜릿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CHOCOLATE TOUR

저희 부부는 종사하던 분야도 다르고 성격이나 사물을 보는 면도 달랐지만 그날 이후 저희는 초콜릿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반기는 "초콜릿부부"가 되었고, 전 세계 구석구석을 초콜릿을 찾아 여행하였습니다. 해외출장을 갈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저희는 늘 함께 하기 위하여 시간을 맞췄습니다.

남편은 해외출장을 갈 적마다, 지금도 늘상 이런 농담어린 말을 합니다. "비서와 출장가면 방을 두 개 써야되지만, 아내와 같이 가면 방을 하나 쓰니까 일단 경제적이고, 아내는 비서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데다, 비서가 못해주는 빨래까지 해주지. 게다가 여자가 먹으면 얼마나 먹어? 밥값 적게 들으니 이 또한 경제적이지… 나는 아내와 같이 출장 다니지 않는 사람들, 통 알 수가 없구먼."

이렇게 시작한 초콜릿 기행. 초콜릿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북유럽의 꼭대기까지, 샌디에고에서 뱅쿠버까지, 위스콘신에서 시카고를 거쳐 펜실바니아까지, 싱가폴에서 인도네시아, 일본, 하와이를 들러 멕시코에 이르는 태평양의 횡단에 이르기까지 초콜릿에 대해 배울 게 있다면 그 어느 곳이던 아무리 먼 길이라도 렌터카를 몰고 찾아다녔습니다.

지난 25년간 방문했었던 초콜릿공장은 수년 전에 100군데를 훌쩍 넘었고, 찾아봤었던 가게는 700개 이후로는 더 이상 헤아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초콜릿이라면 지금도 자다가도 일어나는 게 습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저희의 이런 출장식 '직접 현장가서 배우기' 수학형태는 박물관을 처음 시작할 때도, 박물관의 모든 직원들이 밴을 렌트하여 프랑크푸르트를 시발점으로 두 달 동안 유럽각국을 돌며, 그 동안 형제같이 되어버린 유럽 초콜릿업계의 거장들로부터 살아있는 현지학습과 실습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저희가 그 동안 준비해 온 초콜릿에 대한 계획을 건물에 담으려던 1997년,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제주도에 아주 좋은 건물을 하나 예비하여 주셔서 지금의 초콜릿박물관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PRESENT OF CHOCOLATE MUSEUM

저희 부부가 마라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민족의 발원지라고 별칭하는 백두산이나, 반드시 사수해야 된다며 자주 흥분하곤 하는 독도와는 전혀 다르게, 우리 영토의 또다른 꼭짓점인 마라도는 그냥 그저 거기 있으니까 있는 그런 섬으로만 대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우리 영해 안에 있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와 영토 분쟁의 불씨도 없으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고 여기나 보구나 하고 넘기기에는 무언가 늘 허전한 감이 들곤 했습니다.

마치 자주 말썽을 피워 교무실에 늘상 불려오는 학생은 교장선생님도 아시지만 묵묵히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평범한, 그러나 귀중한 학생은 담임선생님도 잘 모르시는 것과 같이, 그 존재가치를 잘 몰라주는 마라도가 때론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관공서조차도 우리민족과 영토적 의미에서 이곳이 그들 앞에 있는 보물이란 생각이 없는지,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 적지라며, 마라도 최남단비 옆인 정말 남쪽 최정점에 공중화장실이랑 쓰레기소각장을 짓는 정도이니, 나머지 다른이들의 시각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희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곳은 지금을 사는 우리나 우리의 후손에게도 정말 귀중한 곳이지, 쓰레기소각장이나 만들 곳이 아니다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에 오늘도 이제는 마라도의 명물이 되신 ‘로빈손 박아저씨’와 함께 그들이 해야할 "최남단 정원가꾸기"를 대신 열심히 하여 작지만 화사한 건물로 오시는 모든 분들의 기념사진 촬영배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어 2003년 봄에 우도 산호사해변에 또하나의 초콜릿박물관 홍보관이 "빨간머리 앤의 집"( Anne of Green Gables)라는 주제로 완성되었습니다. "Chocolate Castle by the Sea"라는 이름을 달고서 말입니다.

이 집은 산호사 해수욕장 모래사장 바로앞에 바다를 내려다보며 예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카벤디쉬에 있는 동화같은 소설의 배경, 빨간머리앤이 살았다는 집과 그 모습을 같게 지어졌습니다. 이제 저희는 내년중의 실행을 목표로 지금 새롭고 놀라운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두 가지까지만 하고, 다른 기업체들처럼 확장 일변도로 가지 않으려합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여기 초콜릿뮤지움에 모인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지 일반기업의 논리대로 크게크게 가자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좋아하시고, 여기서 일하는 저희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고, 저희 부부가 처음 꿈꾼대로 '좋은 할멈과 할아범'일 수 있으면 저희는 좋은 인생을 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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